사랑하는 이와의 관계 속에서, 문득 혼자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나요. 함께 걸어가는 길이라 믿었는데,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면 상대는 이내 걸음을 멈추거나, 아예 다른 길로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답답하고 외롭지는 않나요. '우리 사이에 문제가 생겼어' 하고 마음속 소리를 내면, 상대방은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듯 귀를 막거나, 아예 그 자리를 피해버리는... 갈등 회피형의 상대를 만났을 때, 당신은 얼마나 아파하고 있을까요.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쩌면 아주 오래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릅니다.

갈등이란 파괴적인 것이라 배웠거나,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냈을 때 버림받거나 비난받았던 아픈 기억이 남아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갈등의 기미만 보여도, 무의식적으로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는 도망치거나 얼어붙어 버리는 것이죠.

그에게는 갈등을 마주하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마치 뜨거운 불을 보면 반사적으로 손을 거두듯이 말이죠.

'싸워봤자 소용없어', '어차피 달라지지 않아', '괜히 이야기 꺼냈다가 더 힘들어질 뿐이야'라는 생각들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며, 그 자리에 굳게 닫힌 문을 만들어요. 그 문 뒤에는 '나'라는 존재가 안전할 수 있다는 일그러진 믿음이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갈등 회피는 관계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쌓여만 가고, 솔직한 소통이 막히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투명한 벽이 생겨나요. 갈등을 피하는 상대방은 그 순간의 불편함은 모면할지 모르지만, 마음속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불안감과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여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갈등을 마주하고 싶어 하는 당신은, 이해받지 못하고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과 좌절감을 느끼게 되죠.

당신의 마음은 '나에게는 이야기해도 괜찮아'라고 끊임없이 외치지만, 그 목소리가 닿지 않는 벽 앞에서 점점 지쳐갈 거예요.

그렇다면 이 벽을 허물고 다시 손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갈등 회피 성향을 가진 상대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들의 깊은 두려움을 당신 혼자의 힘으로 걷어내기는 불가능하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먼저 그들에게 '갈등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과정일 수 있다'는 다른 경험을 선물해 줄 수는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비난하거나 몰아세우는 방식으로는 그들의 문을 더욱 닫게 만들 뿐이에요.

대화의 시작을 알릴 때부터 부드러운 목소리로, 공격적인 말투 대신 당신의 감정을 차분히 전달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너 때문에 실망했어" 대신 "나는 너의 그 행동 때문에 마음이 조금 서운했어"와 같이 '나 전달법(I-message)'을 사용하는 것이죠.

그리고 상대방이 말할 기회를 주고, 그가 어려움을 느낄 때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을 주는 것도 중요해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할까?" 하고 먼저 제안하거나, "너무 힘들면 지금은 그만해도 괜찮아. 하지만 언제 다시 이야기할지 정해두고 싶어" 하고 말하는 것이죠. 갈등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압도당하는 느낌이 두려운 그에게는, 잠시 물러설 수 있는 안전한 통로를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해요.

만약 관계를 회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면,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두 사람만의 '약속'을 정해두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약속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갈등이라는 파도를 만났을 때 어떻게 서로를 지지하고, 어떻게 안전하게 해안가로 돌아올 것인지에 대한 나침반 역할을 해줄 거예요. 이 약속은 비난이나 명령이 아니라,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세워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규칙을 함께 만들어보는 것이죠.

•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할 것 같다고 느껴지면, 잠시 '멈춤' 신호를 보내고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갖자. 그리고 [구체적인 시간 약속: 예: 3시간 후, 혹은 내일 저녁]에 다시 만나 차분히 이야기 나누기로 해."

• "화가 나더라도 비난하는 말이나 상처 주는 행동은 하지 않기로 약속하자. 대신 [구체적인 행동 약속: 예: '나는 지금 화가 나', '나는 서운해' 와 같이 감정만 이야기하기]로 해."

• "서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바로 해결책을 찾으려 하기보다 서로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려 노력하기로 해."

이 약속들은 벽 앞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상대방에게 '우리는 함께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을 거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안심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약속들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지켜지지는 않을 거예요. 오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서로 노력하려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조금씩 변화할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벽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벽을 부수려 애쓰는 데 지치지 마세요. 당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여전히 벽 뒤에 숨어있으려 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어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당신이 줄 수 있는 손길은 분명 의미 있지만, 그 손을 잡고 함께 걸어 나올 용기는 결국 그의 몫이니까요. 당신의 소중한 마음을 돌보는 것을 잊지 마세요. 상대가 벽 뒤에서 나올 때까지 자신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으로 만들면 됩니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당신의 마음이 평안하기를 루나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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